전민 새 생명 교회
교사 헌신 예배
5/27/01
본문: 히 10:19-25
제목: 헌신하는 삶의 원칙
들어가는 말
오늘 장래의 꿈나무들인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자신들의 헌신을 재확인하고 다짐하기 위하여 드리는 헌신 예배에서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이 교회의 성장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아 온 사람으로서 오늘의 이 헌신 예배는 참으로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의 이 귀한 헌신 예배가 있기 까지 담임 목사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의 헌신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어떤 모양이라도 헌신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을 위한 헌신은 그 결실이 당장 나타나지 않는 오래 참음과 믿음과 소망이 결집되지 않으면 힘든 것입니다. 이러한 귀한 헌신을 다짐하는 여러 교사들을 위하여 저는 왜 헌신해야 하는지 그리고 헌신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과거에 헌신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그 헌신이 흔들리는 히브리 성도들을 위한 권면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옳게 이해하여 헌신의 원리들을 살펴보기 위하여 먼저 우리는 오늘의 본문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본문은 “우리 무엇무엇 합시다”라는 권면의 말이 22, 23, 24절에 세 번 나오는 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은 그러한 권면의 이유와 조건들과 방법들에 대하여 부수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이한 문장 구조들을 잘 분석하여 보면, 첫째 헌신의 토대에 대하여, 둘째, 하나님을 향한 헌신, 그리고 헌신의 실천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위의 세 가지 면을 고려하게 되면 바로 그것이 헌신하는 삶의 원칙이 되기 때문입니다.
1. 헌신의 토대: 재림의 소망
25절에서 우리는 우리의 헌신의 궁극적 이유에 대한 단서를 보여주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날이 가까이 옴을 너희들이 보기 때문에”라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25절 문장 전체를 묶고 있는 힘입니다. 즉 위의 다른 권면의 이유를 밝히는 힘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헌신된 삶은 왜 있어야 됩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그날”에 있습니다. 그날이라는 개념은 구약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구약에서 “그날”은 종말과 관련이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 널리 퍼져 있는 신앙의 가장 핵심적 개념은 그날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주님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그 날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도 위의 개념을 그대로 받아드려 흔들리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임하였음을 너희들이 보기 때문에 흔들리지 말고 헌신된 삶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헌신하여 사는 것이 참으로 힘겹고, 지루하고, 가치 없는 헛된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헌신하여 사는 것은 희생뿐이며, 손해 보는 것뿐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실도 없는 것처럼 좌절할 때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임하였다는 소망을 가지고 그들이 당면한 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소망은 우리의 헌신이 흔들리지 않게 되는 토대입니다. 그래서 23절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소망에 대한 고백을 확실한 기초로 삼읍시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그들이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고백한데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신앙의 기초였습니다. 이 기초가 무너지거나 흔들리면 모든 신앙생활은 물론 헌신도 무너지거나 흔들리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의 기초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헛된 꿈이나 토대가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의하여 그 확실성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기 때문이라”고 그러므로 우리가 서 있는 이 토대는 확실한 것입니다.
오! 성도님들이여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고 그 소망의 토대를 굳건히 하시므로 우리의 헌신을 재 확인하고 다짐하기 바랍니다. 이 토대위에서 용기를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좌절과 낙망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용기와 소망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때는 우리를 낙망케 하는 모든 세력들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희생이 보상받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우리의 부활의 확실성을 말하고 나서 고전 15:58에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 줄을 앎이니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 헌신의 역동성: 하나님과의 만남
위에서 말한 헌신의 토대가 주님의 재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의 헌신이 역동적인 힘을 발휘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실존을 우리가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하나님의 실존이 믿어진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그로인한 소망이 확실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로 “가까이 나갑시다”라고 22절에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지성소로 가까이 나가게 될 때 그곳에 계신 하나님을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무엇이든지 그분께 아뢰며, 질문하며, 내려놓으며, 그분의 뜻을 구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며, 격려하며, 용기를 주며, 힘을 주며, 뜻을 알려줍니다. 이렇듯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한 교제의 삶은 우리 영혼의 깊은 만족과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과, 확신과 쉼을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힘을 영적 에너지라고 합니다. 그 영적 에너지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영화롭게 하는 가장 고귀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헌신은 그러한 고귀한 삶을 실제로 이루어 나가는 삶을 말합니다. 이것을 헌신의 역동성이라고 합니다. 내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실제로 가능한 삶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추하고 약한 죄인들이 하나님을 대면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과연 그것이 있을 수나 있는 일입니까? 우리에게 잘난 것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우리의 선행이 뛰어나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주장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아무것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요건이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우리가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19절)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 제사장인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구약의 성전 안에 있는 지성소가 아닌 하나님이 계신 영원한 하늘의 지성소의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기 위하여 친히 몸이 십자가상에서 찢기셨습니다. 그 찢기신 몸이 지성소의 휘장이 찢겨짐으로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열린 것처럼 바로 하나님께로 이끄는 새로운 그리고 살아 있는 길입니다 (20절).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미 더럽혀진 양심을 깨끗이 씻음 받아 마음이 청결 해졌습니다 (22절). 주님의 흘리신 피는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인들과 화목하기 위한 화목 제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미 우리의 죄의 삶으로 말미암아 더러워진 죄의 몸이 맑은 물로 씻김을 받았습니다 (22절). 몸과 마음이 깨끗해 졌고 화목 제물도 이미 드려졌고 길은 환하게 열려 있고 더욱이 우리를 위하여 이처럼 거룩한 제사들 드리신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대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기에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로 가까이 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대면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까?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의 확신 안에서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2절).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때 믿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11:6)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들여다보고 좌절하거나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자기 의를 떨쳐 버리고 내가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성소에 들어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와 능력을 우리의 것으로 소유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3. 헌신의 실천: 사랑과 선행
이제 하나님을 대면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충전 받은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는 참 헌신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24절에서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에서는 “어떻게 서로 사랑하며 선행을 독려할 수 있는지 우리 생각해 봅시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을 하며 선행을 독려할 수 있기 위하여 먼저 모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헌신된 삶을 위하여 성도들이 모일 때 거기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가 있습니다. 서로에게 위로가 있습니다. 서로를 권면하게 됩니다. 서로의 아픔을 위하여 중보하게 합니다. 서로에게 덕을 세우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연약한 무릎과 발을 일으켜 세우게 됩니다 (12:12-13).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일꾼들이 그 속에서 태어나며 세워지며 훈련받게 됩니다. 참으로 헌신된 사람들이 끝임 없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25절) 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헌신을 다짐하겠다고 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미래의 하나님을 위한 일꾼들을 키우는 중차대한 일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각자 각자는 나에게 맡겨진 어린아이들에게 어떠한 사랑을 표현하여야 할지 깊이 생각하며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한 삶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마음 속 깊이 심겨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모범을 보일 때만 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사정을 잘 살펴서 그들의 사정에 알맞게 구체적으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책들을 통하여도 연구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사랑과 선행을 자극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맞추려고 합니다. 오늘 헌신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 여러분 헌신된 삶은 가장 보람된 삶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망의 토대 위에서 우리의 헌신이 굳건해 져야 합니다. 그 토대 위에서 흔들리지 말며 오래 참읍시다. 그리고 우리의 헌신된 삶이 진실
되고 능력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되기 위하여 늘 하늘의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갑시다.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뜻을 나의 뜻으로 삼읍시다. 그리고 무엇이 사랑하는 것인지 선한 삶인지 깊이 생각하며 이 영광된 삶을 실천해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