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1 

평택 대 시무 예배 

본문: 시 133: 1-3 

제목: 연합한 복의 통로 

희망에 부풀어 떠들썩하던 새 천년의 첫해는 이미 졌고, 또 다른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IMF 탈출을 선언하면서 샴페인을 터뜨리고 축배를 올리고 새해를 환영하던 열광을 본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일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일년이 지나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난 것은 어두운 그림자뿐입니다.  

그 원인이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 조그만 땅 덩어리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든 면에서 연합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연합하지 못하고 끊임없는 정쟁으로 일 삼았습니다. 의약분업의 문제로 연합되지 못했습니다. 노, 사, 정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구조 조정 특히 금융계에 있어서도 그랬습니다.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그랬습니다.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분열과 싸움, 생존을 투쟁, 좌절, 불신, 경제 불황에 대한 공포, 가정의 파괴, 실직자의 급상승, 증권의 곤두박질, 공무원 사회와 경제 사회의 도덕적 불감증과 해이, 교회 내에서는 영적 생동력의 저하, 등 사회 전체의 붕괴 현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주변의 현상을 보면서, 남의 일처럼 스쳐 지나갈 수 없고 최소한 두 가지 측면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나는 연합을 이루지 못하는 사회가 가져다주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기독교인 지성인으로써 우리만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하여 연합을 이루어 실천에 옮기겠다는 결단의 필요성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에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지은 다윗 왕의 시에서 이 연합한 삶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편 133편은 아주 간결하고 아름다운 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의 통로로써의 연합한 삶에 대하여 심오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다윗 왕의 시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위에서 전제한 두 가지 배울 바에 대하여 신앙적으로 조명해 보면서 한 해를 시작해 보며 한 해의 공동의 목표로 삼으려고 합니다.    

1. 이 시는 성전에 올라가는 시라고 했습니다. 

 성전에 올라간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 존전에 나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대로 살겠다는 사람들의 가장 존귀한 예배적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고 하나님의 뜻을 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그는 늘 하나님 존전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굴복시키는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한 삶을 가리켜 하나님의 뜻에 연합하여 동거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성전에 올라간다는 말은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한 결단의 표시입니다.  

 

2. 그렇다면 다윗 왕이 깨닫고 경험한 연합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복은 무엇이었습니까?  

 다윗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과 연합하여 동거하는 삶은 실제적으로 형제와 연합하여 동거하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선하고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연합과 형제와의 연합이라는 삶의 실현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많은 것들이 선하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겠지만 다윗에게 있어서의 선과 아름다움의 가치 기준은 전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지어 졌습니다. 우리의 새해의 목표 아니 전 생애의 목표가 다윗 왕처럼 하나님과 연합하여 동거하는 삶을 가장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수 없이 많은 신앙인들이 그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 삶의 활력과 에너지를 잃고, 승리하며 기쁨에 충만한 삶을 살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탈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질 받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 학교에 속해 있는 분들 중에 그러한 분들이 있다면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하나님과 연합하여 동거하는 삶을 가장 아름답고 선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재 발견하여야 할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틀 위에서, 나와 함께 하는 동료를 하나님 안에서 형제로 여기고 공동의 궁극적 목표를 가지고 연합하며 동거하는 삶을 실천하는 삶이 아름답고 선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기름지고 생명력 있는 삶이라고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학교의 존재의 의미는 선교적 사명에 있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습니다. 바로 그 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고 말할 때 이스라엘 땅에서 가장 높은 산인 헐몬 산에서 내려오는 생명의 이슬이 상징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가장 높은 곳 하늘로부터 이 영생의 샘물이 흘러 내려와서 우리에게도 이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생명이 우리를 통하여 흘러 나가게 하는 통로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름답고 선한 삶입니다. 

 

3. 그렇다면 그러한 삶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먼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연합을 깨는 것입니다. 연합을 깨는 가장 치명적인 요인은 이기심에 의한 갈등 구조입니다. 개인의 이기심은 각 과의 연합을 헤치는 일이 될 것이고, 학과 간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집단 이기주의는 학교 전체의 연합을 헤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기심에 의하여 생기는 갈등 구조는 경우에 따라서는 power game의 양상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파벌주의와 분리와 차별을 생성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불신과, 냉소주의, 무관심, 적개심 등과 어두운 그림자가 전체를 덮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가 가장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현상이 하나님만을 삶의 중심에 두겠다던 다윗의 집안에서 자녀들 사이의 이기심과 갈등 구조에 의해서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 결국은 서로 죽이며, 음해하고, 반역하는 그리고 배반하는 일들이 다윗의 종말에 까지 일어난 일 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기심에 의한 갈등 구조가 일어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 연합하여 동거하겠다는 사명감을 최우선적으로 갖는 일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존전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곳에 있다는 가장 고귀한 사명감 속에서 우리의 모든 이기심이 용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학생들이 3000명 이상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연합하여 동거함으로 영생의 복이 저들에게 흘러가지 않는다면 우리의 선교적 사명은 구호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원칙은 내가 결정하려고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일까? 라고 먼저 질문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옆에 지금 계신다면 나의 이 사고와 결정에 동의하실 가? 라는 진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이 행동과 언어와 사고는 과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또는 제사장과 같은 사람으로써 나를 보는 학생들로부터, 동료들로부터, 주위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는가? 질문해야 합니다. 나의 가르침 속에서 선교적 생각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고 있는가?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학과는 학부는 학교 전체는 헐몬 산의 이슬이 시온에 내림 같이 영생의 통로로 연합하여 존재하고 있는가? 질문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에 서야합니다. 그것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입니다” 금년 이러한 목표를 다짐하며 실천하는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